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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그녀를 불륜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영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평점 9점대의 명작 영화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하지만 15년전에 개봉된 이영화를 지금 보게 되것은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갈수록 영화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여전히 난 어리지만, 최소한 15년전의 나보다는 이영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례를 위해 남매가 만나며 시작된다.
변호사로부터 전해 들은 '화장을 하여 유골을 로즈먼 다리에 뿌려달라' 라는 어머니의 유언. 말이 안된다며
절대 화장은 안된다는 그들. 그리고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세권의 노트. 


거기엔 자신들과 아버지가 일리노이 주의 박람회로 떠난 사이에 일어났던 어머니, 프란체스카의
비밀스런 4일이 담겨있다.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프란체스카와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에 올릴 로즈먼 다리의 사진을 찍기 위해 메디슨카운티에 도착 한 로버트 킨게이드
두 남녀가 우연히 만나 일어나는 은밀한 밀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이영화는 그려내고 있다.


여성 프란체스카. 어머니 프란체스카.



우리는 어머니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영화초반 어머니의 불륜이 담긴 노트를 발견한 두 남매의 반응은 비교된다. 
마이클은 어머니가 킨게이드와 잤을까부터 의심하며 그를 죽여버리겠다고 하고 노트를 읽으려 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딸인 캐롤린은 충격은 받았지만 마이클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안정되어있으며 노트를 읽어나간다.


이점이 흥미롭다.

마이클에 있어서 프란체스카는 여성이기 이전에 어머니이다. 그에게 있어선 프란체스카의 고백은 어머니가 가져야할
모습에서 일탈된것이며 참을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자신을 제외한 다른남성에게의
어머니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의 아들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어머니의 불륜은 때론 아들에게 있어 배신감과 증오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남성들은 자신들의 바람엔 관대하면서 여성의 바람은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에반해 캐롤린에게 있어서의 프란체스카는 어머니이기 이전에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놀라움을 받았을지언정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된 것인지에 대해 프란체스카를 이해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노트를 읽는 것이다.



단순한 액자식의 구성이라면 누가 읽든 자연스럽게 프란체스카의 과거가 회상되면 된다.
하지만 감독은 마이클과 캐롤린의 이러한 대화와 모습을 굳이 표현하였고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두 남매의 반응을 통해 슬그머니 나타낸 어머니와 여성이라는 프란체스카가 가진 2개의 정체성은
이 영화가 단순한 중년여성의 일탈된 사랑을 그려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이영화의 평들이 불륜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감탄으로 가득찬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있다.
2개의 정체성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프란체스카의 사랑이 불륜이냐, 로맨스냐 라는 차이는 
그녀를 한가정을 지키는 어머니로써 보느냐, 한여성으로써 보느냐로 부터 시작된다.

극중 후반 마이클이 직접 노트를 읽는 부분은 두남녀가 모두 어머니의 밀회를 이해하기 시작했음을 나타내며
마이클의 소심한 반항을 누그러뜨림으로 인해 관객 역시 자연스럽게 그녀를 어머니가 아닌 한여성으로 볼수있게끔
만들어주는 장치가 되었다. 



엔딩에서 남매는 영화초반 그들의 반대와는 다르게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유골을 로즈먼 다리에 뿌림으로써
프란체스카는 완벽히 어머니에서 여성으로 승화된다.
그리고 프란체스카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통해 그들 역시 내적 성숙을 이루어 그들의 배우자를 한번 더 소중히
하게끔 하고 있다. 



두가지 사랑



앞서 말했다시피 영화의 평은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사랑을 불륜을 미화했다 라고 하기보단
아름다웠다는 것이 압도적이다. 단순히 관객이 그녀를 한 여인으로 받아드렸다라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하다.
왜 이런 감정이 생기는걸까?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감정은 일생에 단 한번 오는 거요'

프란체스카 역시 다르지 않았을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 함께 떠나지 않았다.
극중에선 사랑을 위해 평생을 바치고 싶지만 새삶을 위해 모든것을 버릴 수 없다고 한다.

모든것.

이런이야기가 있다. 남편에 대한 사랑은 자식을 낳음과 동시에 끝이다.
일생에 한번오는 그 사랑도 그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이기진 못했다. 4일간의 밀회가 끝난뒤
남편과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남편에겐 눈길도 주지않고 마이클과 캐롤린을 반긴다.

그녀의 모든것은 그녀의 남편이 아니다. 메디슨카운티의 생활이 아니다. 마이클, 캐롤린, 바로 자식들이다.


만약 그녀가 로버트와 떠났다면 이 영화는 찝찝한 뒷맛을 남기며 찬반양론을 만들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식이 없었다면 로버트와 떠나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관객들에겐 프란체스카의 여성성을 어필했지만 그녀 자신은 반대로 어머니를 선택하였다.

이것이 포인트이다.

그럼으로써 이영화는 한쪽에 쏠리지 않는 균형을 지켜내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녀에 대한 비판보다는 연민을
느끼게 하였으며 이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인 '로먼즈 다리에 유골을 뿌려달라' 는 유언은 그녀 노트의 마지막 
'내 인생을 가족에게 바쳤으니 내 마지막은 로버트에게 바치고 싶다' 라는 소망으로 화룡점정을 찍듯이 완성시키며
그녀의 4일은 불륜이 아닌 생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아름다움으로 완벽히 표현될 수 있었다.

로버트에 대한 사랑과 자식들에 대한 사랑 둘 모두를 이루어낸 그녀를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지며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기억되지 않는 남편



정말로 내셔널지오그래픽에 나올법한 정적이지만 아름다운 메디슨카운티의 영상 속에 나른하게 흐르는 음악,
특히 위에서 언급한 모든것을 가능하게한 절제되면서도 열정을 표출시킨 메릴스트립의 훌륭한 연기는
이작품을 단순한 멜로영화를 초월하게 만들어주었다.

만약 로버트앞에서 수줍어하고 설레여 하는 그녀의 연기가 
부족했다면 관객은 그녀를 여인이 아닌 중년여성으로 보게되었을 것이고 영화의 느낌은 달라졌을 것이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간뒤로도 여운이 길게 남는 좋은 영화였지만 개인적으로 이름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그녀의
남편이 아쉽다.
그는 술주정뱅이도 아니였고 폭력적이지도 않았으며 아내를 사랑하고 자식을 아끼는 정말로 훌륭한 아버지였다.
아무리 아름다움으로 감싼다 한들 그녀의 일탈이 무작정 용서되지 않는것은 내가 남성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전 아내에게 말한 '당신을 정말 사랑하오'... 라는말을 들었을때 마음이 아팠다.
조용히 남편의 옆에 누워 말없이 눈을 감아버리는 프란체스카의 모습은 마치 '죄송해요...' 라고 하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로버트와 만난 후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던 프란체스카.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남편에게 '저도 당신을 사랑해요' 라고 같이 말해줬으면 하는것은 나혼자만의 바램일까.